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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으로 힘들었던 지난 8년을 극복한 건

by 하이하설 2025.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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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제가 우울증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정확히는 우울하다는 걸 인지 못했다가 나중에 약 처방을 받으며 살다가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뭐에 짓눌렸는지 몰라도 유년기에 모든 선택과 행동들의 주체가 제가 아니었어요.

저는 원하는 게 없었고, 어떤 선택을 해도 제가 한 선택이 아니었죠.

 

그저 단순한 변명 같은 게 아니라 기억이 없어요.

저도 남들처럼 유년기를 보냈을 거고 시간이라는 것이 흘러 자랐을 터인데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나지 않아요.

 

저는 우울이라는 것이 마치 친구와 같이 느껴져요.

나를 제일 잘 이해하고 나를 제일 잘 알고 있지만 함께하면 좋지 않은 친구 말이죠.

아마 친구의 방향성 때문이겠죠.

 

살고자 혹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고, 본능에 갔나 봐요.

어떤 생각이 들어 병원을 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궁금해서 갔을 수도 있고요.

 

병원에 가서 상담을 하는 줄 알았는데, 제 증상을 얘기하고 검사를 하더니 약을 처방받았습니다.

먹으라고 하니 그저 그 말대로 약을 먹으며 1년 정도 보냈죠.

 

처음에는 수면 부족으로 인한 우울증일 확률이 높다 하여, 수면제와 우울증 약을 같이 처방받아먹었어요.

그래도 잠을 이룰 수 없어 수면제 강도를 높였습니다.

수면제를 먹고 잠에 들어 일어나면 속을 게워내어야 할 것만 같았고, 세상이 돌았죠.

약 강도가 세서 줄였고, 잠이 오지 않아 술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남편을 만나게 되었는데, 제가 한눈에 반했어요.

 

돌이켜보면, 사람 얼굴을 그것도 초면에 그렇게 뚫어져라 봐도 됐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남편도 대단한 게 그때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제가 오래 뚫어져라 쳐다보는 걸 즐겼다죠. 

결혼 8년 차가 되어서야 알게 된 건, 남편이 제 이상형 기준에 모두 부합하는 인물이었다는 거죠.

 

제가 이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샤워하다 문득 남편에게 고마운 점이 많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에요.

제 인생의 은인입니다.

아마 저는 남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말이죠.

 

연애적에,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들지 않아 술을 먹으니 기억이 혼미했습니다.

무언가 자주 잃어버리고, 사람과 근 며칠간의 기억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한 달 뒤에 뜬금없이 생각이 나기도 했고요.

 

그런 나를 만나기에는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놔주기로 했습니다.

그때 남편이 "아마 나만큼 너를 사랑해 줄 사람은 없을 거야." 라며 잡았습니다.

 

하지만 자존감도 낮고, 감정 기복도 심하고, 매일 술에 절어 살며 우울증에 수면 부족 상태.

즉 인간이 최악일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달고 있는 상태였기에, 남편의 말을 듣고는 오해했습니다.

'이 사람은 나를 그 정도로 밖에 안 보는구나. 역시 나는 그것밖에 안 되나 봐.'라면서 했었어요.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그렇게라도, 사랑받고 싶었던 그 시절의 저는 만남을 이어갔고 결혼을 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건, 그만큼 사랑한다는 뜻이었지요.

허각의 나를 잊지 말아요에 나오는 가사처럼 말이에요.

 

시간이 흘러, 아이를 임신하고 제일 먼저 한 생각은 '가정환경의 대물림을 끊자'였습니다.

그래서 공부하고 노력하고 제가 했던 모든 것들을 바꿨습니다.

이 전의 저와 지금의 저는 아예 다른 사람이에요.라고 소개할 수 있을 만큼이요.

 

바닥의 바닥을 찍고도 그 밑에 더 바닥이 없나 하며 뚫고 있던 저를

아이가 지상으로 들어 올렸고, 저는 지금 평지에서 앞을 향해 걷고 있습니다.

 

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요.

돌아보니 남편은 늘 제 편이었습니다.

 

 


 

 

 

아이가 1살일 때, 외지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들어 시댁과 합가 하자고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정말 좋으신 분입니다.

그렇기에 어머님댁에 가서 자고 오고 남편은 혼자 집에서 밥 먹고 일하러 나가고 했던 날들이 많았죠.

 

이럴 거면 같이 살자 라는 저 혼자만의 생각을 어머님께 남편 상의 없이 말씀드렸고, 어머님은 좋다고 하셨습니다.

남편 또한 아이 혼자 키우는 거 힘들다는 제 말에 군말 없이 알겠다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다른 생활을 살던 사람이 한 지붕 아래 사는 건 쉽지 않습니다.

특히나 상하관계가 뚜렷할수록 더욱이 그렇지요.

 

제가 같이 살자해 놓고 남편한테 시어머니 흉을 봤습니다.

그럼에도 같이 흉을 봐주고 편을 들어주고 그랬어요.

나중에는 제가 "아니 어머님이"라는 말만 꺼내도 '엄마가 또?' 라는 표정을 지어주어 무조건 제 편이라는 걸 느끼게 해 줬어요.

 

제가 어머님 좋다 최고다 하면서 얘기할 때는 오히려 덤덤한 반응이었습니다.

다행이다, 좋았겠다 등등의 반응 말이죠.

 

그렇게 2년을 함께 살다 분가를 했고, 그 자체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다만 얼마 안 가 또 혼자 육아를 해야 하는 것이 버거웠고 그거에 대해 얘기하니 그저 "미안하다"라고 했어요.

 

분가 후 아이가 어릴 적에는 영상통화도 자주 하고, 저도 심심했기에 어머님과 통화를 자주 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고 둘째도 어린이집을 가고 나니 어머님과 통화하는 게 솔직히 지루했습니다.

받은 은혜를 갚지는 못할 망정 그 기간 동안 안에서 불만을 키우고 있던 저는 어느 순간 어머님을 싫어했어요.

 

그 마음을 여과 없이 남편에게 전했더니, 남편은 당연하듯 제 편을 들었습니다.

제 핸드폰으로 어머님이 전화하시면 저는 받지 않았고, 곧바로 남편이 전화했습니다.

제 카톡으로 어머님이 얘기하시면, 남편이 전화하거나 카톡으로 대신 얘기했습니다.

제가 아이들 돌보거나,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말이죠.

 

이제는 어머님이 하실 말씀이 있을 경우 남편한테 전화하시니

오히려 의견도 편하게 주고받고 어머님도 아들이랑 자주 전화할 수 있으니 좋은 거 같아요.

 

 


 

 

 

남편은 낮에 잠을 자고 밤에 일을 하는 야간일을 하고 있었기에 육아를 같이 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쉬는 날에는 놀러 나가자 먼저 얘기해 주고 장거리 운전도 마다하지 않고 제가 가고 싶은 곳이면 다 가주었어요.

아이랑 공놀이 몸놀이도 잘해주고 아이는 지금 "놀이는 아빠 잠자는 건 엄마"라고 할 정도로 잘 놀아주는 사람이에요.

 

물론 완벽한 남편, 완벽한 아빠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잘하겠다", "미안하다", "알겠다", "기억하겠다" 하는 사람이죠.

 

인간관계에서 '완벽'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고,

저 또한 완벽하지 않으면서 그게 아니 꼬아 그것마저 비난하고 비판했어요.

우둔하고 미련한 저는 바로 어제까지도 그런 말을 남편에게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깨달은 건 남편을 만나 보낸 시간들 중 그 어느 순간에도, 남편이 저를 사랑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는 거예요.

남편은 저를 위해 항상 노력하고, 항상 제 위로를 먼저 해주는 사람이에요.

 

저는 아이만 챙기기 바빴고, 그 와중에 제일 중요시하는 교육이 인성 교육이었습니다.

제가 사람 됨됨이가 덜 되었기에 중요하게 여겼는지, 아이 앞에서 저는 좋은 사람으로 자리 잡았어요.

하지만 아이에게 한정이고, 아이와 함께 있을 때만 한정이지 남편과 둘이 있을 때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좀 더 단편적으로 표현하면 남편한테만 이기적이었죠.

 

저는 제가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편이고, 객관적인 사람이라 자만했습니다.

이리 돌아보니 저는 세상에서 제일 말을 못 하고 주관적인 경향이 강한 사람이었던 거 같습니다.

 

사랑해 주는 사람에게 친절의 말, 다정의 말 한마디를 전하지 못하고 그저 비난과 불만만 가득했으며

품어주려는 사람에게 의구심부터 챙겼던 저는 후회도 들지만 이 사실을 오늘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일 뿐입니다.

 

저는 남편 앞에서 항상 저를 지키기 위해 애를 썼고, 남편은 그런 이기적인 저를 옆에 두고도 항상 가정을 먼저 지키는 사람입니다.

손을 뻗어 안아야 하는 품이 앞인지 뒤인지 알아야 하는데,

남편이 그것을 알고 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너무 당연하게 앞을 안는 사람이에요.

 

저였으면 '내가 투덜거리고 불만 가득한 앞을 안아야 하냐, 언제나 내 편이고 든든한 뒤를 안고 너를 등지겠다.'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순간들이 많음에도 남편은 당연하게 앞을 안아줬죠.

 

더 쉬운 길이 있음에도, 본인이 선택한 사람과 사랑에 최선을 다하는 멋진 사람이 제 남편입니다.

 

사람을 믿지 못했던 제가 조금이나마 사람을 믿어도 되지 않나 생각이 들게 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의 앞에 있는 사람이 저라는 사실을 깨달은 오늘, 다시 한번 든든합니다.

 

최근 몇 년간 이 사실을 몸으로 느끼며 살았는데 오늘 또다시 느끼니 절대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인복 하나는 타고났구나 싶습니다.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어머님도 제게 은인입니다.

제가 받은 사랑과 은혜를 깨달았고, 저는 평생을 다해 갚아도 갚지 못하는 이 마음들을 어찌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하나씩 맞춰가며 하나씩 조금이라도 어머님의 마음에 높이와 같아질 수 있기를 바라며 노력할 거예요.

 

 


 

 

 

저는 우울증으로 약을 먹고 치료를 받은 지 8년 뒤에 삶을 살 수 있었고, 그 뒤로 주변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제가 나을 수 있었던 건 약이 아닌, 믿음이었습니다.

 

한 없이 나약하고 존재 자체가 검은색인 거 같은 나,

그런 나조차도 변함없이, 한결같이, 묵묵히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나도 사랑받을 수 있고, 나도 살아갈 자격이 있다는 믿음이요.

그 자체로 저는 이제 더 이상 검은색이 아닙니다.

 

사랑해 주는 사람이 굳이 남일 필요는 없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기대야만 살 수 있는 나약한 존재라서가 아니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에요.

태초부터 혼자 자라나서 태어나지 않으니까요.

 

한 번 빠져드는 건 사소할 수 있지만, 빠져나오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과 감정이 필요해요.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고 자각하더라도 자각함으로서 더욱이 괴로워집니다.

 

정신 질환은 셀 수 없이 많고, 모든 인간은 정신 질환을 하나씩은 겪고 있습니다.

그 증상이 두곽을 드러내면 '병'으로 간주되어 치료를 받지만 일상 속에 은은하게 자리 잡고 있을 경우나

성격 혹은 성향으로 인식되어 버린 경우에는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사실 이 생각을 하다가 남편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N이라 그런가 봐요.

 

제가 겪었던 지옥을 혹시나 지금 겪고있는 분이 계시다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제 빠져나왔으니까 하는 말이 아니에요.

 

그저 그런 시기가 있는 듯 합니다.

지금 빠져 나왔다고 다시 빠지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죠.

그러나 이제는 한 번 빠져 나왔으니 두번 빠져나오긴 더 수월할 거란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인생의 미션 중 특별 미션을 하나 깬겁니다.

파훼법은 이미 제 손에 있게 된 겁니다.

본인도 얻게 될 거에요.

 

그러니 마음껏 울고 마음껏 슬퍼하고 마음껏 연민하세요.

그러다 그게 지겨워지면 나오시면 됩니다.

 

저는 챗지피티가 나오고 혼자 많이 떠들고 많이 울고 그랬네요.

그 위로가 지겨워질쯤 하루에 한 번 못해도 이삼일에 한 번 샤워를 했고, 집 청소를 했고 점심을 차려 먹었습니다.

 

잘 차려먹으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걸 먹었습니다.

돈이 들긴 해도, 약값과 내 마음값에 비하면 별 거 아니다 라는 생각으로 먹고

저녁에는 후회도 했다가 잔고를 보고 휑해졌다가 했지만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걸 먹었습니다.

감자칩이 먹고 싶을 때에는 감자칩으로 점심을 먹었고, 쿠키가 먹고 싶을 때에는 쿠키가 점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점심 먹는 게 익숙해졌을 때, 아침을 먹어보기로 했고 저녁에 잠을 못 자도 누워있었습니다.

아침은 물을 먹더라도 링티 같은 걸 타먹거나 차를 마시는 등 맹물만 먹지 말자는 생각으로 먹었어요.

 

지금은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잘 먹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오전에 잠들지 않고 오후에도 거뜬히 버팁니다.

 

하루에 1개만 하셔도 돼요.

오늘은 샤워, 다음주는 샤워와 점심.

다음주 중 샤워와 점심 둘 다 못하고 넘어가도 괜찮으니 하나만 해도 성공입니다.

 

일반인도 매일 삼시세끼 먹는 게 아니고 가끔 속이 안 좋거나 늦거나 등등의 이유로 거르기도 하니까요.

그거 하나 못 지켰다고 실패 아니니 괜찮습니다.

그거 하나 며칠 못 지켜도 괜찮습니다.

 

우선 샤워와 집 청소.

이거에만 집중하면서 삶을 이어가다보면 그저 잇는게 아닌 끌어 가고 싶은 삶이 찾아올 겁니다.

 

힘내지 마시고 삶을 이어가세요.

저는 당신이 삶을 이어가길 바랍니다.

그런 제가 있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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